감자탕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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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탕에 대한 이야기

‥ 자유게시판

by 토파니 2020. 5. 11.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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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강원도 영월 구석에 있는 '골마차'라는 완전 산골동네 출신입니다. <선생 김봉두>라는 영화가 '연포'라고 마차에서 좀 더 가면 있는 동네가 무대인데요. 거기보다 더 시골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희 가족들 모두 그곳 출신인데요. 감자탕 이야기가 나와서 좀 간단하게 써봅니다.

감자탕의 유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는데요. 심지어는 방송에서도 "감자탕은 돼지 감자뼈로 만들기 때문에 감자탕이다."는 거짓을 퍼트리고 있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트랙백한 글에 있는 것처럼 감자탕은 감자가 들어가서 감자탕이 맞습니다.

그리고 항간에 떠도는 감자탕이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음식이라는 주장도 완벽한 허구입니다. 왜냐면 국내에 고추가 전래된 것이 고작 400년에 불과합니다. 감자가 전래된 것은 고작 180년밖에 안 되었으며, 감자가 본격적으로 식용으로 재배된 것도 20세기 초에 와서였죠. 당연한 것이지만 감자탕이 이때부터 만들어졌다고 해도(당연히 그럴리 없지만) 100년도 안 된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강원도에서는 감자탕이라고 불리는 음식을 '뼈다귀국' 혹은 '뼈해장국'이라고 불렀습니다. 강원도에서 살아본 분이라면 알겠지만, 강원도는 정말 먹는 게 귀한 동네입니다. 경작지는 좁고, 가축도 많지 않고요. 풍부한 먹거리라고는 옥수수와 고구마 그리고 감자가 다였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고추밭이 많기도 해서 고추도 흔했죠. 당연한 것이지만 고기는 매우 귀했고, 강원도 산골에는 당연히 생선은 거의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기보다도 더 귀했던 것이 해산물입니다.

당시만해도 정육점에서 고기를 모두 발라내고 살점은 하나도 없는 돼지뼈를 거의 공짜에 받아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돼지비개도 1000원 주면 비닐봉지에 한가득 담아 줄 정도로 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거의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 가져온 살점은 하나도 없는 돼지뼈와 돼지비개를 넣고 좀 화려하게 먹으려고 할 때는 돼지 내장도 썰어 넣습니다. 여기에 건더기 양을 늘리고 배부르게 먹기 위해서 가장 흔한 감자와 시레기(혹은 우거지)를 넣어서 끓인 것이 뼈다귀국입니다. 그런데 정육점에서 가져오는 돼지뼈들은 당연한 것이지만 냄새가 지독합니다.(대부분 오랫동안 보존한 것이기 때문에 냄새도 심하고 위생적으로도 좋지 못한 뼈들입니다.) 미지근한 물에 넣고 아무리 냄새를 없애려고 해도 한계가 있고, 이 돼지뼈 냄새를 없애기 위한 조치가 고추가루를 잔뜩 넣고 깻잎을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음식이 소위 '감자탕'이라고 불리는 강원도식 뼈다귀국입니다.

이 뼈다귀국은 원래 뼈에 붙은 살을 먹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돼지뼈를 푹 고으면 돼지뼈 속에 있는 척수가 녹아서 하얗게 빠져나옵니다. 바로 이걸 먹는 음식이었죠. 그것도 어떤 의미에서 고기는 고기니까요. 1960년대까지만 해도 고기를 먹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강원도 산골은 큰 잔치가 있거나 고사라도 지내야 돼지를 잡았죠.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뼈를 구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니 강원도식 뼈해장국은 적어도 돼지뼈가 흔해진 시대에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생각됩니다.(돼지뼈가 흔해야 버리는 걸 반 공짜로 받아오겠죠.) 길어봤자 40~50년 정도 된 음식이라는 것이죠.(부대찌개도 그쯤 되었죠)

감자를 넣는 이유는 이 뼈다귀국이 주로 겨울에 먹는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강원도는 쌀이 귀했습니다. 겨울이 되면 쌀이 더 귀해지는데요. 이때 주식으로 먹는 건 쌀이 아닌 감자와 옥수수입니다. 겨울에 배부르게 먹을 건 결국 시레기와 감자 뿐인데, 그것만으로는 너무 맛이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고기 냄새는 나야죠.-_- 쉽게 말해 겨울이 되면 감자말고는 거기다 넣을 게 없었기 때문에 감자를 넣은 겁니다. 무슨 대단한 선현의 지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요.

저는 한 10여년 전에 서울에서 '감자탕'이라는 걸 처음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면 그건 좀처럼 기억하기도 싫은 음식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 뼈해장국은 일종의 배고픔의 상징과도 같은 음식이었고,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거지만 '감자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고기가 잔뜩 붙은 뼈를 넣어 끊여낸 모습을 보니 좀 색다르더군요.

언제부터 강원도 뼈다귀국이 감자탕이라고 불렸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감자뼈 유래설'은 잘못된 이야기라는 걸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애당초 이 음식 자체가 버리는 돼지뼈는 부위에 관계 없이 무조건 다 넣고 끊여서 벼를 쪼갰을 때 나오는 하얀색 골을 파먹는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러니까 무슨 특정 부위의 뼈를 넣는 음식도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강원도는 탄광이 아주 많았습니다. 탄광촌들이 살아 있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았죠. 그런데 1980년대 중반부터 이런 탄광들이 채산성 등의 문제로 하나 둘 폐광을 하게 되면서 강원도의 지역 경제는 서서히 붕괴되어 갑니다. 그러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접점이 있는 충청도 지방(제천, 온양, 단양), 원주. 서울 등으로 빠져나가게 됩니다. 저희 집안도 강원도 토박이들이었는데 거의 모든 친척들이 199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1/3 정도가 식당을 합니다. 이것도 십여년 전부터 감자탕 가게들이 많아 진 것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금은 저도 감자탕을 즐겨 먹고 있지만, 감자탕을 먹는 분들도 한 번 정도 이 음식이 먹을 것이 없어 힘들었던 시절의 유산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드셨으면 합니다. 정말 행복한 시절이 되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이런 음식들이 꽤 많이 있군요.

부대찌개 -> 미군 부대에서 버리는 음식찌꺼기들을 모아서 끓여 낸 전골 음식.

짬뽕 -> 일본 나가사키의 차이나타운에서 값싸게 많은 양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민하다 만들어 낸 면 요리.

돈카츠 -> 고기를 어떻게 하면 더 양을 불려서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얇은 고기에 튀김옷을 입혀서 튀겨내는 방식으로 3배 이상의 두께로 만들어 낸 요리.

PS.

생각보다 우리가 즐겨먹는 요리의 역사는 짧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카레라이스'인데, 지금 우리가 먹는 감자, 당근, 양파, 고기를 블록 형태로 잘라서 만드는 카레라이스는 일본에서 메이지시대 말기에 만들어진 것이죠.(당시에는 '라이스 카레') 불과 100년 정도 지난 일본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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